제롬 케르비엘과 소시에테제네랄의 49억 유로 손실
2008년 1월 19일 토요일, 라데팡스에 있는 소시에테제네랄 타워의 고층에 소수의 임원들이 모여 자기 은행의 한 젊은 트레이더가 실제로 무엇을 사들였는지를 밝혀내려 했습니다. 전날 오후 한 통제 담당자가 어느 독일 은행을 상대로 기록된 유난히 큰 거래상대방 익스포저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 독일 은행에는 해당 거래의 기록이 없었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거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요일 저녁에 재구성 작업이 끝났고, 서른한 살이자 미들 오피스를 떠난 지 4년 된 제롬 케르비엘이 유럽 주가지수 선물을 약 500억 유로어치 매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를 고용한 은행의 주식 시장 가치보다도 큰 명목 익스포저였습니다.
최고경영자 다니엘 부통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고,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포지션을 정리하기 전에 이를 공개한다면 유럽의 모든 트레이딩 데스크가 청산에 앞서 팔아치우도록 부추기는 셈이었습니다. 조용히 정리한다는 것은 월요일 아침 2001년 이래 최악의 하루를 맞이할 시장에 500억 유로어치 선물을 쏟아 넣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를 택했습니다. 세 차례의 거래일에 걸쳐 은행은 포지션을 모두 팔았고, 1월 24일 목요일에 49억 유로를 잃었다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미들 오피스에서 델타 원으로
케르비엘은 프랑스 금융 엘리트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1977년 브르타뉴의 퐁라베에서 미용사 어머니와 금속공예 교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소시에테제네랄의 트레이딩 플로어에 인력을 공급하던 그랑제콜이 아니라 리옹에서 금융시장 조직·통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는 2000년에 은행에 들어가 5년을 미들 오피스에서, 곧 트레이더가 하는 일을 점검하는 컴플라이언스와 통제 부서에서 보냈습니다.
2005년에 그는 델타 원 데스크로 옮겼습니다. 델타 원 트레이딩은 기초자산을 일대일로 추종하는 상품, 곧 지수 선물과 상장지수펀드와 스왑과 증권을 다루며, 이 데스크의 임무는 차익거래였습니다. 주식 바스켓과 그에 연동된 선물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를 활용하되 방향성 노출은 거의 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허용된 순포지션은 수천만 유로 단위로 측정되었습니다. 은행 스스로의 표현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업무였고, 바로 그 때문에 두 층 위의 이색 파생상품 데스크보다 감시를 덜 받았습니다.
문제는 그의 이전 경력이었습니다. 30년에 걸친 무단 거래 사건들을 다룬 킴벌리 크라위에츠의 연구는 거의 모든 사건에서 같은 구조적 특징을 짚어냅니다. 그 트레이더는 케르비엘과 닉 리슨처럼 통제 부서 출신이었거나, 자신의 거래 기록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방치되었다는 것입니다 (Krawiec, 2009). 어느 대사 작업이 어느 날 밤에 돌아가는지, 그리고 확인 요청이 들어오기까지 미확인 상태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5년 동안 익힌 사람은 그물의 구멍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숨겨진 장부의 작동 방식
케르비엘이 실제 포지션으로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그는 유럽 주가지수가 2007년에는 내리고 2008년 초에는 오른다는 쪽에 큰 방향성 베팅을 걸었습니다. 그 포지션의 기록으로 한 일은 더 치밀했습니다.
그는 진짜 선물 포지션마다 가짜 반대 거래를 입력했습니다. 결제나 확인에 시차가 있는 유형이라는 이유로 고른 거래상대방과의 선도 거래나 장외 거래였습니다. 은행의 화면에서 두 다리는 거의 영에 가깝게 상쇄되었고, 이는 리스크 시스템이 델타 원 장부에 기대하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가짜 다리가 확인 요청을 부를 만큼 오래되기 전에 그는 이를 취소하고 다른 것을 입력했습니다. 임시 거래, 기술적 취소, 그룹 내부 거래상대방, 보고 기간 밖으로 날짜를 잡은 거래 등 그가 쓴 도구는 5년 동안 직접 관리했던 운영 절차에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조사관들은 그가 동료들의 접근 코드를 사용했고 조회에 답하기 위해 이메일을 위조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2007년 내내 감춰진 포지션은 수익을 냈습니다. 2007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약 14억 유로의 미실현 이익이 쌓였는데, 케르비엘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신고할 수 없는 금액이었으므로, 비슷한 규모의 가짜 손실로 다시 가렸습니다. 그해 그의 보수는 10만 유로 남짓이었습니다. 그는 60만 유로의 상여금을 요청했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그는 장부의 방향을 뒤집어, 이미 내리고 있던 시장에서 매수로 돌아섰습니다. 1월 중순에 명목 금액은 약 500억 유로에 이르렀고, 유로 스톡스 50과 DAX와 FTSE 100 선물에 나뉘어 있었으며, 14억 유로의 이익은 수십억 유로의 손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일흔다섯 건의 경보
은행의 사외이사 위원회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와 함께 작성해 2008년 5월 23일에 내놓은 보고서는 통제 장치가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지에 관해 보기 드물게 솔직합니다. 2006년 6월부터 2008년 초까지 케르비엘의 활동을 두고 제기된 개별 경보와 이상 징후와 조회는 일흔다섯 건 정도에 달했습니다 (PwC, 2008).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이 일을 끝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질문이 나올 만한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은 거래가 제대로 입력되었는지가 아니라 거래상대방이 존재하는지였습니다.
포지션의 상당 부분이 놓여 있던 파생상품 거래소 유렉스는 2007년 11월 소시에테제네랄에 서한을 보내 포지션 규모와 거래 양상을 문의했습니다. 케르비엘은 그 답신을 작성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어떤 거래의 서류를 외부 당사자가 아니라 그 헤지의 서류와 대조하는 통제 기능은, 한 사람의 계산을 그 사람 자신의 계산과 대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필립 조리옹은 이 사건을 같은 달에 다른 은행들을 무너뜨리고 있던 모형의 실패가 아니라 베어링스와 다이와의 사례 쪽에 놓습니다. 여기에는 잘못 가격이 매겨진 상품도, 결함 있는 손실가치 가정도 필요하지 않았고, 다만 아무도 총액 기준으로 재지 않은 명목 포지션이 있었을 뿐입니다 (Jorion, 2008). 무단 거래의 지속성에 관해 쓴 마크 웩슬러는 유인에 관한 관련된 지적을 남깁니다. 대차대조표를 전혀 쓰지 않고도 이익이 들어오는 데스크는 더 이상 차익거래 사업이 아니며, 그 이익 자체가 경보라는 것입니다 (Wexler, 2010).
Source: Euronext Paris — CAC 40 annual closing levels
1월의 사흘
기업금융·투자은행 부문을 이끌던 장피에르 뮈스티에가 청산을 맡았습니다. 지시는 신호를 내지 않고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계약에서도 정해진 거래량 비중을 넘지 말 것, 세 개 거래소에 분산할 것, 그리고 회사 최고위층의 극소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말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시장 감독기구와 프랑스은행에는 통보했지만 시장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1월 21일 월요일은 미국의 공휴일이었고, 이는 유동성이 얇고 미국인 매수자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유럽 지수는 온종일 하락했습니다. CAC 40 지수는 6.83퍼센트 내린 4,744.45로 마감해 2001년 9월 이래 최악의 장을 기록했고, DAX는 7.16퍼센트를 잃었습니다. 그 하락 가운데 얼마가 소시에테제네랄의 매도 때문이고 얼마가 유럽에 도달한 서브프라임 공포 때문이었는지는 끝내 정리되지 않았으며, 은행은 자사의 거래량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줄곧 주장해 왔습니다. 다투어지지 않는 사실은, 그날 유럽 지수 선물의 최대 매도자가 자신이 보유한 줄도 몰랐던 포지션을 청산하던 한 은행이었다는 점입니다.
1월 22일 화요일 뉴욕 개장에 앞서 연방준비제도는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75베이시스포인트 내려 3.50퍼센트로 정했는데, 정례 회의 사이에 이루어진 긴급 조치였고 그 폭은 1980년대 초 이후 쓰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위원회는 전날의 세계적 급락에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그 급락이 어느 중앙은행 관계자도 통보받지 못한 파리의 청산으로 증폭된 것인지가 워싱턴에서 잠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연준 관계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은 그 일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 날짜 | 사건 |
|---|---|
| 2000년 8월 | 케르비엘이 미들 오피스로 소시에테제네랄에 입사 |
| 2005년 | 델타 원 차익거래 데스크로 이동 |
| 2007년 11월 | 유렉스가 은행의 포지션 규모를 문의 |
| 2007년 12월 31일 | 숨겨진 장부에 약 14억 유로의 미실현 이익 |
| 2008년 1월 18일 | 통제 담당자가 가짜 거래상대방에 의문 제기 |
| 2008년 1월 19~20일 | 라데팡스에서 주말 동안 포지션 재구성 |
| 2008년 1월 21일 | 청산 시작, CAC 40이 6.83% 내린 4,744.45로 마감 |
| 2008년 1월 22일 | 연준이 회의 사이에 금리를 75bp 내려 3.50%로 |
| 2008년 1월 23일 | 청산 완료 |
| 2008년 1월 24일 | 49억 유로 손실과 55억 유로 증자 발표 |
| 2008년 5월 23일 | 사외이사 보고서가 놓친 경보 약 75건을 확인 |
| 2008년 7월 | 은행감독위원회가 400만 유로의 과징금 부과 |
| 2010년 10월 5일 | 케르비엘 유죄, 배상액 49억 유로로 결정 |
| 2016년 9월 | 베르사유 항소법원이 배상액을 100만 유로로 감액 |
1월 23일 수요일 종가 무렵 장부는 비었습니다. 은행이 이튿날 공개한 계산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연말에 14억 유로의 미실현 이익을 보이던 포지션, 1월에 약 63억 유로에 이른 청산 손실, 그리고 2007년 회계에 상각된 순액 49억 유로였습니다.
발표
목요일의 성명에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담겼습니다. 거래 손실은 49억 유로였습니다. 여기에 서브프라임과 모노라인 익스포저에 대해 20억 5천만 유로가 추가로 상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은행은 방금 증발한 자본을 대체하기 위해 JP모건과 모건스탠리가 인수하는 55억 유로 규모의 주주배정 증자를 발표했습니다. 2007년 순이익은 전년의 52억 2천만 유로에 견주어 9억 4700만 유로로 줄었습니다.
부통은 이 사건을 "예외적인 규모"의 사기라고 불렀고 두 차례 사임을 제의했습니다. 이사회는 두 차례 모두 거부했고, 그는 6개월치 급여를 포기한 뒤 2008년에 최고경영자에서, 이듬해에 회장에서 물러났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실은 며칠 만에 이 은행이 외국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을 알렸는데, 파리에서는 이것이 약해진 경쟁자에 대한 관심이 가상의 것이 아니었던 BNP파리바를 향한 경고로 읽혔습니다. 7월에 은행감독위원회는 통제 실패를 이유로 소시에테제네랄에 4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물렸습니다. 손실의 약 12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 트레이더 | 기관 | 연도 | 손실 | 상품 |
|---|---|---|---|---|
| 제롬 케르비엘 | 소시에테제네랄 | 2008 | 49억 유로 | 주가지수 선물 |
| 퀘쿠 아도볼리 | UBS | 2011 | 23억 달러 | ETF와 지수 선물 |
| 하마나카 야스오 | 스미토모 | 1996 | 26억 달러 | 구리 |
| 닉 리슨 | 베어링스 | 1995 | 8억 2700만 파운드 | 닛케이 선물과 옵션 |
| 이구치 도시히데 | 다이와 | 1995 | 11억 달러 | 미국 국채 |
재판을 받은 것은 누구였습니까
케르비엘은 거래 사실을 부인한 적이 없고 자기 몫으로 은행에서 단 1유로도 빼내지 않았습니다. 첫 경찰 조사부터 마지막 상고에 이르기까지 그의 변론은, 상급자들이 이익을 묵인했으므로 그 방법도 묵인한 것이며, 자본을 전혀 쓰지 않는 데스크에서 수천만 유로를 만들어내는 장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검찰은 묵인이 승인은 아니며 위조된 이메일은 회계상의 실수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파리 법원은 2010년 10월 5일 그에게 배임과 문서위조와 전산 무단 사용의 유죄를 선고하고 징역 5년에 2년 집행유예를 내렸으며, 은행에 49억 유로를 갚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의 연봉의 약 15만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자, 어느 법원도 실제로 받아낼 수 있으리라 여기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는 그해 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뒤 로마에서 파리까지 걸어온 다음 2014년 5월부터 형을 살았고, 9월에 전자 발찌를 찬 채 석방되었습니다.
판결의 민사 부분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2014년 파기원은 형사 유죄는 유지하면서 배상 부분을 파기했고, 하급심이 은행 자체의 과실을 따지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베르사유 항소법원은 2016년 9월 그 금액을 다시 산정해 100만 유로로 정하면서, 소시에테제네랄의 통제 실패가 스스로의 손실에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별개로 프랑스 세법은 은행이 그 손실을 공제하도록 허용했고, 그 혜택은 약 17억 유로로 추산되었습니다. 국가가 사실상 피해의 3분의 1을 떠안는다는 이 계산은 법원이 사건을 마무리한 뒤로도 오랫동안 국민의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그 손실이 사들인 것
소시에테제네랄은 살아남았습니다. 증자는 소화되었고, 은행은 그해 말 2008년 금융위기에서 무너진 기관들의 운명을 피했으며, 이후 3년을 그린 보고서가 짚어낸 원칙을 중심으로 거래 포착과 대사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데 썼습니다. 그 원칙이란 건물 밖의 누군가가 존재를 확인해 주어야만 헤지가 헤지라는 것입니다.
이 양상은 2008년에 이미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닉 리슨이 무너뜨린 베어링스도 거래 권한과 결제 권한이 한 사람에게 합쳐진 데서 비롯했고, 스미토모의 하마나카 야스오가 운용한 구리 장부는 위조된 확인서 뒤에서 10년을 이어졌으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는 1998년에 거래상대방 전체에 걸친 총 포지션을 아무도 합산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빌 황의 패밀리 오피스는 2021년에 그 합산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델타 원 데스크를 닫지 않았습니다. 그 둘레의 통제 장치를 다시 세웠을 뿐입니다. 케르비엘이 라데팡스에서 걸어 나온 지 3년 반 만에 UBS는 런던에 있는 자사 델타 원 데스크의 한 트레이더가 23억 달러를 잃었으며 그것이 결제일을 미룬 가짜 선도 거래 뒤에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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