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감회에서의 어느 일요일 오후
2015년 7월 4일 토요일, 중국 본토 21개 대형 증권사 회장들이 베이징 금융가에 위치한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 본부로 소집되었습니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3주 만에 6월 12일 정점인 5,166에서 전일 종가 약 3,687까지 28퍼센트가 하락한 상태였습니다. 개인 증권 계좌에서 발생한 마진콜이 규제 당국에 역사적 준거가 없을 만큼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고, CSRC 부주석 좡신이(莊心一)는 좌중에게 각 증권사가 순자산의 15퍼센트, 총합 약 1,200억 위안을 안정화 펀드에 출자할 것임을 통보하였습니다. 이 펀드는 지수가 4,500 아래에 있는 동안 우량주 ETF를 매수하고 보유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날 저녁 신화통신을 통하여 발표된 공동 성명에는 21개의 서명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음 날 일요일 7월 5일, 국무원은 28건의 신규 IPO를 모두 정지시켰습니다. 월요일 개장 시점에 증권사들은 이미 매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주말은 중국 자본시장 현대사에서 국가가 증권업 전체를 단일한 매수 상대방으로 동원한 첫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사례도 아니었습니다. 이후 7주에 걸쳐 중국인민은행은 금리·지급준비율 동시 인하를 단행하였고,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는 중앙 국유기업에 보유 지분 매각 금지를 지시하였으며, 공안부는 '악의적'이라 명명한 공매도 세력에 대한 형사수사를 개시하였고, 이른바 '국가대표팀'(中证金, 中央汇金, 国家外汇管理局, 국유 상업은행 등)이 직접 매수에 약 1.8조 위안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수가 2,927에서 바닥을 친 8월 26일, 공식 명분은 시장 안정에서 금융 안정으로, 다시 정치 안정으로 옮겨가고 있었으며, 주식시장 하락을 국가신용 문제로 규정하는 시각이 중국 정책 도그마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배경: 개혁, 후강퉁(滬港通), 그리고 개인투자자 붐
이 강세장은 처음부터 투기적 사건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첫 번째 다리는 2013년 11월의 18기 3중전회 이후 공산당이 추진하여 온 주식시장 인프라에 대한 정책적 베팅이었습니다. 3중전회 공보는 시장이 자원배분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표현을 채택하였는데, 2014년 중반 중앙금융공작회의는 이 어구를 CSRC에 대한 임무 지시로 번역하여 전달하였습니다. 자본이 은행 부채 일변도의 구조를 깨고 주식을 통하여 흘러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가장 가시적인 인프라는 2014년 11월 17일 개통된 본토–홍콩 간 쌍방향 거래 채널인 후강퉁이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본토 개인투자자는 처음으로 홍콩 상장주를 매수할 수 있었으며, 해외 기관은 2002년 이래 외국인 접근을 제한하여 왔던 QFII 쿼터 절차 없이 A주 일부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llen and Qian, 2010).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2014년 첫 10개월을 1,990~2,300의 좁은 박스권에서 보냈습니다. 후강퉁 개통 후 4주 만에 지수는 19퍼센트 상승하여 2014년을 3,235로 마쳤습니다 — 1월 시점에 중국 성장 둔화를 전망하던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였던 연간 50퍼센트 상승률이었습니다. 11월 21일 단행된 2년 만의 첫 인민은행 기준금리 인하는 리파이낸싱 압박을 받던 부동산 개발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동시에 강세장에 두 번째 다리를 제공하였습니다. 2015년 4월에 이르러 지수는 4,500을 돌파하였고, 인민일보는 「4,000은 강세장의 시작에 불과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였는데, 개인투자자들은 이를 지수 수준에 대한 국가의 '풋옵션' 약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개인투자자 유입은 중국 자본시장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였습니다. 중국 증권등기결산공사(CSDC)는 4월 17일까지의 주에 신규 A주 거래 계좌 166만 건이 개설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325만 건이었습니다. 5월 둘째 주에는 5거래일 동안 413만 건의 신규 계좌가 개설되어 A주 계좌 총수가 2억 건을 넘어섰습니다.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후속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규 계좌 보유자의 56퍼센트가 중학교 이하 학력자였으며, 2015년 개설된 모든 개인 계좌의 보유 기간 중위값은 11일이었습니다. 5월에는 주식 앱이 처음으로 중국 애플 앱스토어 순위에서 게임 앱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신용융자와 우산형 신탁
2014~15년의 강세장을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닌 금융안정의 문제로 만든 것은 레버리지였습니다. 상하이와 선전 거래소의 신용융자는 2010년 이래 통제된 실험이었으며, 대형 증권사에 한하여, 그리고 지정된 종목 목록에 한하여만 허용되었습니다. CSRC가 공식적으로 집계하는 융자 잔고는 2014년 6월 약 6,700억 위안에 달하여 있었습니다 — 적은 숫자는 아니었으나, 약 25조 위안에 이르는 A주 유통주식 시가총액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습니다. 이후 12개월 동안 이 잔고는 세 배 이상으로 증가하여 2015년 6월 18일 2.27조 위안에 도달하였으며, 이는 중국 주식시장에서 기록된 사상 최고치였고 회색지대 채널까지 합산하면 유통주식 시가총액의 9퍼센트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회색지대 채널이 두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우산형 신탁 — 펀드 자회사 구조를 통하여 투자자 자금을 모은 뒤 주식 담보를 받아 트레이더에게 5:1 레버리지로 재대출하는 자산관리 상품 — 은 2013년 이래 CSRC 감독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고,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CBRC)의 자산관리 영역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2015년 봄에 이르자 우산형 신탁과 P2P 융자 플랫폼은 CSRC의 정규 적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개인 계좌에 추가로 약 1.5조~2조 위안의 신용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한 중국 대형 증권사의 계좌 단위 데이터를 활용한 학술 연구는, 회색지대 계좌의 보유 포지션 중위값이 현금 담보의 7배에 달하며 직전 6개월 이내에 개설된 계좌가 대부분이라는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Bian and Zhou, 2018).
폭락 직전 발간되어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였던 PBOC의 2015년 금융안정보고서는, 신용 잔고 증가율이 현대 데이터 집계가 시작된 이래 어느 주요 주식시장의 신용 증가율과도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PBOC, 2015). 그 조용한 권고는 CSRC에게 신용융자 규제를 강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CSRC가 2015년 1월 16일 단행한 첫 시도는 단일 거래일 8퍼센트 하락과 인민일보 편집국의 격앙된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6월 12일에 단행된 두 번째 시도는 덜 가시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더 결정적이었습니다.
Source: Shanghai Stock Exchange daily closes
규제 강화, 연쇄 청산, 그리고 차이나 블랙먼데이
6월 12일 금요일, CSRC는 우산형 신탁을 매개로 한 장외 마진 융자 규정 강화 공고를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거래일인 6월 15일 월요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대량 거래 속에서 2퍼센트 하락하였습니다. 회색지대 융자 적층은 거의 즉시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5:1 레버리지를 제공하던 마진 플랫폼은 담보가치가 임계치를 깨자 자동 강제 매도 루틴을 작동시켰고, 가장 무겁게 신용을 진 종목들 — 특히 창업판(ChiNext)의 소형주 — 에 대한 강제 매도가 다음 거래일 지수의 추가 3.5퍼센트 하락을 야기하였습니다. 6월 19일 금요일까지 지수는 한 주 동안 13퍼센트 하락한 상태였습니다. CSRC는 그날 저녁 이 움직임을 '건강한 조정'이라 부르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진 청산은 이후 2주 동안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우산형 신탁 상대방에 직접적 익스포저를 보유한 증권사들은 추가 담보를 요구하였고, 그 추가 담보는 강제적 주식 매도의 형태로 도래하였으며, 그 강제 매도는 아직 마진콜을 받지 않은 계좌의 임계치까지 가격을 더 끌어내렸습니다. 6월 12일부터 26일 사이 지수는 24퍼센트 하락하였습니다. 6월 27일 토요일 밤 PBOC가 단행한 비상 조치 —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의 동시 인하, 2008년 가을 이래 첫 결합 완화 — 는 월요일 아침에 단일 거래일 5.5퍼센트 반등을 만들어 내었으나 수요일 마감까지 모두 반납되었습니다. 연쇄 청산은 더 이상 밸류에이션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질서 있게 청산할 경로가 없는 신용 한도의 구속력이 문제였습니다.
7월 4일의 주말 CSRC 회의는 가격 하락을 처음으로 끊어 낸 개입이었습니다. 증권사 안정화 펀드, IPO 정지, 그리고 中证金이 증권사에 대한 신용 한도를 2.6조 위안으로 확대하겠다는 병행 발표는 7월 6일 월요일에 5.8퍼센트 반등과 정점 이후 처음으로 안정적인 종가 흐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기저의 청산을 멈추지는 못하였습니다. 7월 6~10일 한 주 동안 1,300개가 넘는 상장사 — A주 전체의 절반 이상 — 가 '중대 미발표 정보' 또는 '구조조정 진행'을 이유로 거래정지를 신청하였습니다. 이는 종목 단위에서 강제 매도를 막기 위하여 규제 당국이 휘두른 거친 도구였습니다. CSRC는 거래정지를 안정화 조치로 공개적으로 옹호하였으나, 홍콩 증감회(SFC)는 본토 측에 거래정지가 시장이 가졌던 가격발견 기능의 무결성을 무너뜨렸다고 비공개로 전달하였습니다.
| 일자 | 기관 | 조치 |
|---|---|---|
| 2015년 6월 27일 | PBOC | 기준 대출금리 25bp, 지급준비율 50bp 인하 — 2008년 이래 첫 동시 완화 |
| 2015년 7월 1일 | CSRC | 회색지대 마진 융자에 대한 조사 일시 중단 |
| 2015년 7월 4일 | CSRC + 21개 증권사 | 1,200억 위안 안정화 펀드 공동 설립, 지수 4,500 이하에서 ETF 매수 의무 |
| 2015년 7월 5일 | 국무원 | 대기 중이던 28건의 IPO 전면 정지 |
| 2015년 7월 8일 | CSRC | 5% 이상 보유 대주주의 6개월간 매도 금지 |
| 2015년 7월 8일 | 中证金 | 증권사 대상 신용 한도 2.6조 위안으로 확대 |
| 2015년 7월 9일 | SASAC | 중앙 국유기업에 보유 지분 축소 금지 지시 |
| 2015년 7월 13일 | CFFEX | 주가지수 선물 한 계좌당 10계약으로 포지션 한도 강화 |
| 2015년 7월 31일 | 공안부 | '악의적 공매도'에 대한 형사수사 개시 |
| 2015년 8월 4일 | PBOC + SAFE | 국유은행을 중앙후이진의 대리인으로 활용한 직접 매수 |
| 2015년 8월 25일 | PBOC | '차이나 블랙먼데이' 이후 추가 25bp 금리 인하, 50bp 지준율 인하 |
| 2015년 8월 26일 | CSRC | '국가대표팀'의 직접 매수가 '필요에 따라' 계속됨을 확인 |
공황의 두 번째 다리는 8월 24일 월요일 — 국제 언론이 '차이나 블랙먼데이'로 부른 날 — 에 도래하였습니다. 그 방아쇠는 외부 요인이 내부 요인만큼이나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8월 11일 PBOC가 위안화 일일 고시 변동 폭을 확대하면서 기준 환율을 1.9퍼센트 절하한 결정은 국제적으로 경쟁적 평가절하로 읽혔으며, 이후 10일에 걸쳐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시장으로 전이된 충격이 후강퉁을 통하여 막 들어오고 있던 외국인 계좌의 위험회피적 포지셔닝을 통하여 다시 상하이로 환류하였습니다. 상하이는 8월 24일 8.5퍼센트, 25일 7.6퍼센트 하락하였고, 26일 2,927에서 안정화되었습니다 — 6월 12일 정점에서 53거래일 동안 43퍼센트 하락한 결과였습니다. 인민은행은 같은 날 저녁 추가적인 결합 완화를 발표하였습니다. 가격은 즉각 반응하지 않았으나, 완화 소식과 동시에 또 한 차례의 가시적 국유은행 매수가 이어졌으며, 다음 거래일 지수는 소폭 상승하여 마감되었습니다.
국가대표팀
8월 말부터 시장을 떠받친 매수는 어떠한 통상적 정의로도 시장조성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국가 기구를 통하여 운영된 국가 차원의 주식 매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中证金은 2011년에 증권사 대상 증권 대차와 재금융을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나, 2015년 7월에 그 권한이 행정적으로 확대되어 국유은행에 개설된 계좌를 통하여 주식을 직접 매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대 상업은행의 국가 보유 지분을 관리하는 재정부 산하 중앙후이진은 같은 방향으로 거래 장부를 확대하였습니다. 외환보유고를 운영하는 SAFE는 국유은행을 매개로 한 규제 회피적 본토 주식 매수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별도로 공시되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총 규모는 전체가 공개된 적이 없었습니다. CSRC의 2018년 회고는 2015년 한 해 국가 연계 매수 총액이 1.5조 위안이라고 인정하였으나, 골드만삭스가 2016년 7월에 행한 재구성 — 국유은행 지주사 단위 증권투자 항목을 위기 이전 기준선과 비교한 방법론에 기반함 — 은 구조화 상품과 신탁을 통한 부외 포지션까지 포함한 광의의 총액이 1.8조 위안에 가깝다고 결론지었습니다. 2015년 8월 말 A주 유통주식 시가총액 대비로는 약 7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정확한 수치가 어떻든, 연말 시점에서 국가대표팀은 A주 유통주식 시가총액 기준 5대 단일 보유자 중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포지션은 당시 공표된 일정에 따라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국유은행들은 2016년에 걸쳐 공시 주식 포지션을 축소하였으나, 중앙후이진과 관련 국가 기구들은 본래 안정화 명분이 종료된 이후에도 개입 기간에 추가된 주식 라인을 계속 보유하였습니다. 2016년 말 상하이 종합지수는 약 3,100까지 회복되어 있었으며 — 2015년 6월 정점에서는 크게 떨어진 수준이었으나 8월 저점보다는 충분히 높았고, 국가대표팀이 추가 매수 없이도 방어 가능한 범위였습니다. 개입은 2016년 10월에 행정적으로 종료가 선언되었으나, 본래의 권한이나 청산 과정 어느 쪽도 공개적 입법·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과의 비교
2015년 에피소드에 대한 보다 유용한 비교 지점은 다른 신흥시장 위기가 아니라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입니다. 두 사례는 밸류에이션 프로필을 공유합니다 — 양 시장 모두에서 투기적 성장주 시장의 정점 후행 PER이 70배를 상회하였고, 본판은 20배에 근접하였습니다 — 그리고 두 사례 모두 단일한 거시 뉴스 한 건이 천장을 표시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점도 같습니다. 그러나 정책 대응에 관한 모든 차원에서 둘은 갈라집니다.
2000년의 붕괴는 깊은 공매도 잔량, 옵션시장 헤지, 개인 흐름을 흡수할 수 있는 기관 딜러북, 그리고 가격이 출회되도록 허용한 규제 당국 — 31개월에 걸쳐 78퍼센트의 나스닥 종합지수 누적 하락 — 위에서 기관·전문 자금이 주도한 사건이었습니다. 2015년의 붕괴는 정규 및 비정규 채널을 통하여 신용을 사용한 개인 계좌가 얕은 공매도 잔량과 미발달한 주식 옵션시장, 개인 흐름에 비하여 작은 기관 딜러북, 그리고 가격 출회를 허용하지 않은 규제 당국 위에서 주도한 사건이었습니다. 2018년 CSRC 리뷰가 명시한 중국 정책 당국의 결론은, 효과적인 숏 측 헤지가 결여된 개인 신용 위에 세워진 A주 시장이 미국식 정책 템플릿 위에서 운영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속 CSRC 개혁 논저의 중심에 놓이게 된 암묵적 결론은, 국가가 진입을 권장한 시장이 국가가 손실을 허용하는 시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그마는 그 이후 중국 자본시장 정책을 형성하여 왔습니다. CSRC의 2016~2020년 개혁 프로그램은 정규 신용잔고 한도를 축소하였고, 우산형 신탁 감독을 CBRC에서 CSRC·CBRC 공동 체계로 이관함으로써 강화하였으며, 개인 계좌에 대한 보다 세분화된 적합성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국가대표팀이 보유한 잔여 포지션은 2010년대 후반에 걸쳐 국가에 수동적이면서도 신뢰성 있는 가격지지 메커니즘을 제공하였습니다. 2018년 상하이·선전 하락에는 보다 작지만 기능적으로 유사한 개입이 적용되었습니다. 2022년 부동산 개발업체 스트레스와 그에 수반된 주식시장 하락에는 유사한 조치에 대한 수사적 약속이 따랐으나, 실제 투입된 규모는 결코 2015년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2015년이 비교되는 사례들
중국의 2015년 에피소드는 당시 국제적 관찰자들이 손에 잡았던 일본·미국식 비교 프레임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1985~1989년 일본 자산 가격 거품은 압도적으로 기관 레버리지 이야기 — 은행, 기업 간 상호보유, 플라자합의의 거시적 배경 — 였으며, 정점 이후 일본의 정책 대응은 자산가격이 10년에 걸쳐 디플레이션하도록 허용한 점진적 긴축이었습니다. 1929년 미국의 대폭락은 콜머니와 브로커 융자를 통한 개인 신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가까운 평행을 가졌으나, 당시의 정책 체계는 중국이 전개한 것과 같은 통합적 국가 매수 프로그램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분석적 비교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주식을 직접 매수할 권한을 가지고, 재무부가 IPO를 두 달 동안 금지하고, 법무부가 식별된 공매도 세력에 대한 형사수사를 개시한 가상의 1929년입니다.
2010년 플래시 크래시와의 미시구조적 비교 또한 불완전합니다. 플래시 크래시는 깊은 옵션·선물 헤지를 갖춘 시장에서 일어난 일중 유동성 사건이었습니다. 2015년 상하이 폭락은 양자 모두가 결여된 시장에서 일어난 10주에 걸친 신용·신용융자 사건이었습니다. 2015년이 그 어떤 선행 사건보다 명확히 보여준 것은, 현대 중국 국가의 주식시장 하락에 대한 관용도가 부동산·신용시장·통화 하락에 대한 관용도보다 현저히 좁다는 점, 그리고 주식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 도구함이 다른 어느 주요 자본시장보다 더 넓다는 점이었습니다. 2015년 사례는 이후, 국가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자산군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권위주의적 자본시장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묻는 모든 분석가에게 실증적 준거점이 되었습니다 (IMF, 2015).
지수에 대한 마지막 메모
상하이 종합지수는 2015년을 3,540에서 마감하였습니다. 6월에 2.27조 위안을 넘어섰던 신용잔고는 연말에 1.18조 위안으로 낮아졌고 2016년에 걸쳐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7월 5일에 정지된 28건의 IPO는 2015년 11월과 12월에 걸쳐 관리된 일정에 따라 시장에 복귀하였습니다. 7월에 거래정지를 신청한 1,300개 종목은 8월 중순까지 모두 거래를 재개하였으며, 거래정지 남용에 대한 CSRC 조사는 201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7월 말과 8월에 최소 197명의 트레이더를 구금하였던 공매도 세력에 대한 형사수사는 2016년 중반까지 기소 없이 대체로 종결되었으나, 시틱증권의 전직 임원 쉬강(徐刚)은 개입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부자거래 혐의로 2017년에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폭락 당시의 CSRC 주석이었던 샤오강(肖鋼)은 2016년 2월에 교체되었으며, 언론은 이를 6~8월 사건에 대한 지연된 책임 신호로 읽었습니다.
7월의 어느 토요일에 4,500 아래에서 ETF를 매수하라는 임무로 만들어진 기구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中证金의 직접 매수 권한은 폐지된 적이 없으며, 다만 잠잠해졌을 뿐입니다. 지수가 국무원의 주목을 끌 만큼 빠르게 떨어질 때마다, 베이징 증권사의 시장전략 노트를 마무리하는 그 문장 — 国家队回来了, '국가대표팀이 돌아왔다' — 은 본토의 모든 개인 트레이더에게 시장 관찰이 아니라 통화정책의 한 조각으로 읽힙니다. 그 문장이 가능해진 것은 2015년의 그 여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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